읽어봅시다
2015.08.03 12:43

꽃들에게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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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깃을 여미게 하던 겨울이 가고

점점 따뜻해지는 봄이 오면

우리에게 항상 같이 따라오는 것이 있다.

그걸 일명 식곤증이라고 한다.

점심을 먹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오는 그 녀석과 사투란......

그래서 식곤증을 피해 밖으로 산책을 나가 본다.

따뜻한 봄날 오후 밖에 앉아 있으면

나비가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모습이 내 모습을 설레게 한다.

그러나 그런 자유로운 나비도 그러한 모습이 되기 위해

애벌레 과정을 거친다는 생각은

내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느님 나라로 초대하고 계신다.

이는 곧 하느님의 다스림을 뜻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며

우리에게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것을,

그리고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요청하고 계신다.

우리는 수많은 이기심과 탐욕 속에서 발버둥치며 현세의 안락을 위해서 힘쓴다.

이기심이라는 거대한 껍데기 속에서

안주하며 지금의 행복만으로 만족한 채

더 높은 곳을 향해 오르려 하지 않는다.

포올러스의 소설 '꽃들에게 희망을'에서는

이런 인간의 모습을 무척이나 잘 말해 주고 있다.

만일 세상에서 높은 곳만을 위하여

남을 짓밟고 올라서려고 한다면

결국 나비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짝을 만날 수 없는 꽃들은

세상에서 결국 자취를 감추고 말 것이다.

인간 세상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남을 밟고 올라서는 사회,

미래의 것 보다는 현실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사회는

진정 올바로 태어날 수 없는 사회이다.

한 마리의 애벌레가 현재의 안락한 삶을 버리고

더 높은 무언가를 찾기 위하여 자신을 잃어버리는 길을 걸었듯이

사제의 길을 가려는 우리들 역시 완성되기 위하여

보다 높은 이상으로 탈바꿈하기 위하여

묵은 자신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자신을 맞아 들여야 한다.

관습, 선입견, 잘못된 문화를 과감히 벗어버리고 우리는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유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하느님만을 선택하고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언제라도 포기할 수 있는 자세이며,

그 고통을 과감히 견뎌내어 하느님 나라의 자유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마음가짐일 것이다.


2015.07.31 12:00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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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학교 생활이나 가정 생활을 하는 중에

가장 많은 슬픔을 느끼는 경우는

다른 이들에게서 믿음을 받지 못할 때이다.

신용을 잃고 살아가는 경우

자신이 어떠한 말을 해도 믿어 주지 않는 경우

우리는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소외를 당하는 것 같고

이런 자신의 모습이

비참해지기까지 한다.


하느님과 우리 신앙인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수많은 기도를 한다.

"주님 이번 일이 끝나면 꼭 열심히 성당에 다니겠습니다.",

"주님 당신이 해주신 일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도 진심으로 이웃을 사랑하겠습니다."

그러나 기도가 끝나면 무엇을 말했느냐는 듯이 금새 잊어버리고 만다.

성 바오로 사도께서도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사람은 살 것이다."라고

이야기하고 계신다.

그리스도인 교리에 있어서도 믿음은 신덕의 하나로 표현된다.

나무의 뿌리에서 빨아 올린 영양분이 나무의 전체로 퍼지듯이

우리의 영신 생활에 있어서도 뿌리는 신덕이 된다.

우리가 아무리 하느님이 누구이신가?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

생각하고, 고민하고, 철학적인 질문을 해서 많은 것을 얻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수덕 생활을 하는데에는 별다른 도움을 줄 수 없다.

수덕 생활에 있어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이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열심하고 활력있는 믿음이 용솟음 칠때

우리 마음의 신앙은 빛과 열을 발하여 일상 생활을 선하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일상 생활에는 작은 빛을 내는 촛불에서 수 Km 떨어진 곳까지 비추어 주는 거대한 조명 등이 있다.

우리 마음속 믿음의 깊이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결코 약한 믿음을 가지고는 완숙한 인간의 경지에 오를 수 없다.

우리 예비 신학생들은 사제직을 살도록 희망하는 사람들이다.

만일 사제직을 희망하는 사람이 수덕 생활이 이루어지지 않는,

전혀 신앙을 갖지 못한 사람이라면 어떠하겠는가?


진정 중요한 것은

신앙에 대한 믿음 안에서

사제직을 준비하여

다른 이들에게 신앙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2015.07.28 11:26

나의 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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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 순간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지며

나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될까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그들의 가치관을 접하고

그들이 나에게 내린 판단을 접하게 된다.

어떤 사람에게는 맹목적인 비판을 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선 얼굴이 부끄러울 정도의 칭찬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들은 순간적인 일들이며

앞으로 자신이 나아갈 길에 대해서

우리는 먼저 생각하고 결심해야 한다.

우리가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과의 깊숙한 만남이 필요하다.


만남이란

그저 얼굴을 보고 앉아 있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진실한 만남이란

서로의 속 마음을 털어놓고 공감을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우리가 만난다는 것은 남을 "앎"과 "공감"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우리 예비 신학생들은 어떠한 만남을 준비해야 할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이다.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수없이 많이 예수님을 만나고 있다.

하지만 만나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은

예수님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마음을 쏟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예비신학생들은

그리스도를 찾아 사는 삶을 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자신의 앞날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고

진정으로 다른 이들과 공감을 형성하여 만나는 가움데

스스로를 알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내가 싫어하는 친구 곁에도,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친구 곁에도

언제나 함께 하고 계신다.

혹시 자신의 이기심을 부려 예수 그리스도를 외면하며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우리는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많은 것을 알아보고

다른 이들의 조언을 구하고 다른 사람과의 풍부한 만남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예비 신학생으로서 그리스도를 알기를 원한다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내 자신 곁에서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나를 지켜보고 계신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펼칠 수 있는 사제가 될 수 있기를

하느님께 간절히 구한다면

어느 순간엔가

"과연 예수님은 나와 함께 계시구나"

라는 확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015.07.24 17:11

나는 과연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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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세상에서 많은 것을 겪고 경험하면서 자신의 성격을 고치고 목적을 위해서 살아 나가려 한다. 그러나 우리 청소년 시기에는 무언가 갈등과 방황이 많고 목적을 정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을 위하여 나아가기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 지금 자신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나와 같은 이는 단 한사람도 없다. 나는 완전한 독립 개체이며 지혜와 덕을 지닌 인물이다. 그러나 나 혼자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개방적이어야 한다. 나는 목표를 이루려고 살고 있으며 그 목표란 바로 생에 있어서 가장 가치 있는 무언가를 이루려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발견하면서 살아야 한다.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피조물이라는 일면을 지니고 있다. 사람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이라는 말 역시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말이듯 인간이란 어울려 사는 것임을 의미한다. 나 자신이 나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이제까지 살아온 모습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살아갈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아야 한다. 인간에게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 자유이듯 인간에게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달란트를 십분 발휘할 의무가 있다.


    인간 자신이 자아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첫째 자기 긍정의 자세가 필요하다. 이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일도 처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스스로 결정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 즉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셋째 스스로 행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 스스로 결정한 일을 남이 해주기를 바란다거나 다른 사람이 동기를 부여해 주기를 바란다면 결코 스스로의 일을 해 나갈 수 없다. 자신의 결정에 스스로 용기를 내는 일은 자아 실현에 있어 무척 중요하다. 넷째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적 이해가 필요하다. 이는 자신의 행동 방향이 완전히 한곳으로만 치우치는 것을 막아주고 함께 사는 세상에 있어서 다른 이들과의 관계 개선이 내 삶에 무척 중요함을 가르쳐준다.


    자아실현이란 나 자신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이를 실행하면서 다른 이들에 대해 자신의 마음을 개방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며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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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신학생 모임은

교구 사제를 지망하는 성소자들의 성소 계발을 그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먼저 성소자들이 건전한 인격을 지닌 신앙인으로 성장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그들이 갖고 있는 사제직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정화시켜 구체적인 동기가 되도록 이끌어 봄으로써

올바른 지향을 가지고 결단을 내리도록 돕고자 한다.


◈ 사제를 지망하는 예비 신학생은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

'나와 너와의 관계'

그리고 '나와 하느님의 관계'라는

세 가지 측면의 관계를 복음화 하는데 그 목표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 사항을 잘 실천할 수 있도록 합시다.


1.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

나에 대해서 올바른 사랑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모든 관계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예비 신학생 시기는

현실의 나의 모습과 되어져야 할 나의 모습을 바로 보고 인정함으로써

올바른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진정 올바른 나를 사랑할 수 있을 때 개방되고 자유로운 인간으로 성장하게 되고

나아가 성사적 존재로서 너의 하느님을 올바로 사랑하는 기초를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2. 나와 너와의 관계

예비 신학생들은 '너'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이는 세상의 모든 것들과 관계를 맺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예비 신학생은 이러한 관계 속에서 나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나'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과 세상에 대한 올바른 안목을 키움으로서

제3자로 머물러 있었던 이웃과 세상을 '나-너와의 관계'로 이끌어 들여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육화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을 본받아 이웃과 세상을 위해 투신할 수 있어야 한다.


3.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

사제직을 지향하는 예비 신학생들은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정립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도, 묵상, 전례를 통하여 내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영을 깨달아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며 하느님은 누구신가?

하느님 앞에 '나'는 누구인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하느님 부르심을 올바로 식별하고

도전을 제기하며 순수한 지향과 굳은 신념을 갖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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